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 (문단 편집) === 근대의 평가 === 동로마에 대한 폄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근대의 일인데 [[중세]]의 모든 것을 나쁘게 보았으니 중세 제국인 동로마 제국 역시 그랬을 것이다. 18세기 영국인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자신의 저서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로마 제국의 후계인 제국을 평가절하했으며,[* 기번이 고의적으로 동로마 제국을 비하했다기보다는 당시 그가 참고한 자료가 반 동로마 제국 감정이 강했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글들이 많았던 점이 크다.] 이는 저작 내에서도 암시되듯이 냉담자 성향이 있던 기번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기 1~2세기의 원수정을 포기한 로마"는 그저 로마의 이름만 빌린 짝퉁이라는 관점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로마 제국 쇠망사라는 책은 제목에서 보듯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 [[오현제 시대]]와 그 이후 시대를 비교서술하는 관점이고 이런 관점 하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중흥기 역시 평가절하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계몽시대에 전반적인 제국 평가에 영향을 주어 동로마 제국이란 그저 "궁정의 음모와 환관이 판치던 저질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모 근대 저자는 "'''저열 제국'''(The Lower Empire)" 이라고도 서술했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기번은 양반이다. 물론 당시 모든 역사가가 그렇게 여긴것은 당연히 아니지마는...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서구 역사학계가 계몽사관 - 근대사관의 그늘을 벗어나,[* 가령 헬레니즘 철학의 경우, 1950년대에 초판이 나온 William Keith Chambers Guthrie의 《희랍 철학 입문》(The Greek Philosophers)에서는, 찬란한 고전 그리스 철학에 동방이 묻은 변질 철학으로 묘사되었다.] 비서유럽 문명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동로마 제국의 평가도 달라졌다. 예를 들어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에는 고유의 하자가 있었으며, 그들의 승리는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군사적 역량 자체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서 가끔 운 좋게 이겼을 뿐 대부분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평가했지만 20세기 초에 활동한 역사학자 찰스 오만은 기번의 이런 평가는 잘못되었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패배가 우연의 결과이고 승리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특별히 불리한 조건이나 상황, 불운 등이 겹쳤을 때 가끔 패배했을 뿐, 대부분의 싸움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분석한 바 있다. 즉 당대까지(근세~근대)의 역사가들이 동로마 군대가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무력했던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 것은 불공정하고 잘못된 평가인데, 이에 반론하기 위한 글이 많이 쓰여지고 있지만 만연한 편견을 반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개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일단 기번 본인의 신념과 사조(계몽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기독교 -특히 구교-에 대한 반감과 고대 로마에 대한 흠모)에 의한 폄하의 영향도 상당하다. 동로마 제국의 군사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면, 동로마 제국은 단위부대당 최강의 파괴력으로 전략적 타개책이 될 수 있는 중기병이나 전문 기술이 필요한 공성전력 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군(타그마병)와 무장 수준과 정예도는 낮지만 수가 많고 주둔 지역에 익숙한 지방군(테마병)을 동시에 운용하여 테마병을 일차적 거점 방위의 핵심으로 삼고 타그마병을 활용하여 역습-분쇄하며 대규모 전력 동원 시에는 타그마병을 핵심전력, 테마병을 보조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군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으며 궁기병 등 자국 내에서 수급하기 어려운 특수한 병종을 확보하면서 병력 유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의 용병을 고용하고, 건설 및 유지비용이 막대한 해군까지 운용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동로마의 적이었던 다른 세력들의 군사제도, 즉 '중장기병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총 병력 동원수에 한계가 있고 해군이나 특수한 병종의 확보에는 크게 불리한' 봉건제나(사회생산력을 소수 기병에게 쫙 몰아준다) '대부분의 성인 남성을 전력으로 확보 가능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심각한 사회적 제약이 따르는' 유목정, '용병을 활용하여 군사력의 주축을 맡기다보니 어느새 용병들이 정치의 주축까지 장악하고 나라를 차지해버린' 이슬람 제국의 [[맘루크]]등과 비교해 보면 군사력 확충과 정국 안정을 상당수준까지 동시에 확보한 고도화되고 효율적인 군사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하지만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에 교훈을 주고자 하는' 역사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실증적인 차원보다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적당히 재해석된 이야기가 훨신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동로마 제국은 대체로 용병을 상당히 잘 활용하여 군사적 위기를 여러 번 극복하면서도 용병에 대한 통제력은 비교적 잘 유지할 수 있었던 편이었지만... 국민개병제가 대세가 되기 시작한 시기를 살았던 기번이나 대세가 된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나라는 스스로 지켜야지, 저 로마를 봐라. 용병에 군사력을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쇠퇴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알기 쉽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번 당대의 학술적, 기술적 한계로 인해 발생한 오해의 영향 역시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동로마 제국의 군사력을 예로 들어 보자면, 중세 중기 이후 동로마 제국은 서방의 가톨릭 세력, 북방의 유목민 세력, 중동의 이슬람 세력이 3면에서 가해오는 공세를 버텨내면서도 수백년 이상 번영했고, 상식적으로 상당한 군사적 역량이 없었다면 이러한 3면 전쟁에서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경이 전선인 상황에 처해있던 동로마 제국으로써는 자국의 모든 군사적 역량을 방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정복을 통해 영토를 다시 확장할 여력까지는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즉, 동로마 군대가 방어전에서 승리하면 그 승리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제국의 유지일 뿐이니 역사에 그리 크게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야르무크 전투]]나 [[만지케르트 전투]]처럼 지휘관의 무능이나 불운 등이 겹쳐 패배하게 되면, 이는 곧 영토의 상실과 국가적 위기로 돌아오니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된다. 결국 동로마의 역사를 읽다 보면 비잔티움 군대가 중요한 전투가 있을 때마다 대부분 패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동로마가 승리하면 제국은 별 일 없이 유지되니 중요한 전투가 아닌 것이 되고, 패배해야 중요한 전투(제국을 위기에 몰아넣은 패배)가 되는 것이다. 이런 [[편향#s-2.3.3|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실증적인 관점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사료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기번은 이런 과학적 역사관이 형성되기 이전, 사료의 수집과 해석 역시 현대보다 극히 부족하던 시대 인물이라는 점은 참작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번은 근대적인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레오폴드 랑케보다 이전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정확히 기번이 죽고 1년뒤에 랑케가 태어났다.] 동로마 제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어휘 차원에서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Byzantine'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권모술수를 쓴; 복잡한, 미로처럼 뒤얽힌, 헝클어진'이라는 형용사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속이 복잡하게 배배 꼬여 있는, 음험한 능구렁이 같은 놈들로 본 것이다. 아무튼 오랫동안 가해진 동로마 폄훼로 인해 서유럽인들은 물론이고 비유럽 세계 주민들조차 1123년이나 유지된 동로마 제국을 부정적으로 취급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재평가되는 분위기이다. 다만 이건 오히려 지나친 동로마 편애이자 역으로 서유럽에 대한 폄훼이다. 동로마의 대외정책은 주위 '야만인'들을 이간질시키는 '''이이제이'''였다. 정부기구 중에는 아예 [[https://en.m.wikipedia.org/wiki/Bureau_of_Barbarians|야만인 국(局)]]도 있었다. 이것이 동로마 입장에서는 야만인들을 무력을 쓰지 않고 사전에 제압하는 '세련된 외교'일지 몰라도 반대편 입장에서 동로마는 권모술수적이고 음험한 존재인게 맞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